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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어의 법칙 폐기]① 반도체 패러다임 대전환…IT융합 칩수요 다변화 시대
작성자 웨스트팩 날짜 16-04-14 15:48
icon_link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4/12/2016041201802.html [3646]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도당동 동부하이텍 제1공장. 진한 노란빛을 띠는 특수 조명을 따라 반도체 생산 설비들이 줄지어 있다. 설비에 달린 신호등은 '가동 중'이라는 뜻의 파란 빛을 내뿜고 있다. 천장에 달린 웨이퍼(반도체 원판) 이동장치는 '지이잉' 기계음을 내며 축구장만한 팹 구석구석을 누볐다.

동부하이텍 1공장은 완전(Full) 가동 중이었다. 2014년 초 까지만해도 60~70%에 그쳤던 가동률은 2015년 3월부터 90%를 넘어섰다. 동부하이텍 공장 관계자는 "주문이 많아 공장을 완전 가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동부하이텍은 시스템반도체(비메모리) 파운드리(위탁생산) 회사다. 스마트폰에 쓰이는 전력반도체나 터치칩 등을 주문받아 생산한다. 그러나 동부하이텍은 이 분야에서 가장 앞선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는 않다. 대만 TSMC 등은 나노미터(10억분의 1미터) 선폭(線幅)의 공정 기술을 갖췄지만 동부하이텍은 여전히 미크론(100만분의 1미터)급 공정에 머물러 있다.

그런데도 동부하이텍에 위탁생산 주문이 밀려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상무는 "사물인터넷(IoT) 등 다양한 IT융합 분야가 등장하면서 반도체 수요도 다양해졌다"며 “그동안 반도체 시장에서는 무조건 최고 성능의 제품이 살아남는 구조였다면 이제는 저성능에서 고성능까지 다양한 수요처가 생겼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안 상무는 “굳이 최고성능, 최고집적도의 반도체가 아니어도 되는 분야가 늘어나면서 최고 수준의 공정을 갖고 있지 않은 동부하이텍 공장도 풀가동되고 있다”며 “반도체의 수요가 성능보다 적용처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무어의 법칙'이 종말을 맞았다고 해석한다. 무어의 법칙은 인텔 창업자 고든 무어가 제시한 이론으로 반도체 집적도는 1년 6개월마다 두 배씩 증가한다는 내용이다. 반도체의 집적은 한정된 면적에 보다 많은 트랜지스터를 집어 넣는 작업이다. 집으로 비유하면 동일한 면적에 보다 많은 방을 짓는 것이다.

한정된 면적에 트랜지스터를 많이 담으면 성능이 좋아질 뿐 아니라 수익성도 높아진다. 반도체 업체들이 무어의 법칙을 정설로 받아들이며 죽기살자식으로 집적도를 높여온 배경이다. 선두 자리에는 인텔과 삼성전자가 있었다. 그러나 인텔이 무어의 법칙 폐기를 선언하면서 반도체산업의 패러다임은 대전환기를 맞았다.

◆ 삼성·인텔 “무어 법칙과 다른 길 간다”

2016년 2월 12일. 세계 종합 반도체 1위 기업인 인텔이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 올린 공시에 반도체 업계는 들썩였다. 인텔은 “기존 틱-톡(tick tock) 2단계 개발 사이클에서 ‘최적화(optimization)’ 단계를 추가한 3단계 사이클로 나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틱톡 사이클은 무어의 법칙을 토대로 한 인텔의 신제품 출시 전략이다. '틱' 단계에서 기존의 설계를 바탕으로 미세 공정을 개선해 성능을 높이고, '톡' 단계에서 완전히 새로운 설계를 기반으로 칩을 개발했다. 이런 틱과 톡 단계를 거치면서 반도체 집적도는 1년6개월 마다 2배로 높아지는 과정을 밟아왔다. 인텔이 여기에 최적화 단계를 새로 넣은 모델을 도입하면서 사이클의 기간도 2년에서 3년으로 늘었다. 무어의 법칙을 따르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인텔의 발표는 "반도체 업계가 무어의 법칙을 공식 폐기할 것"이라고 한 과학저널 네이처의 보도에 뒤이은 것이었다. 네이처는 지난 2월 "반도체 업계가 '무어의 법칙을 넘어서(more than Moore's law)'라는 이름의 새 기술 로드맵을 공개할 것"이라고 전했다.

세계 메모리 반도체 1위 기업인 삼성전자는 인텔보다 앞서 무어의 법칙에서 벗어났다. 2008년 경쟁업체들과의 치킨게임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3차원 수직구조 낸드플래시(V낸드)를 내놓으면서부터다. V낸드는 반도체 크기를 줄이는 대신 소자를 아파트 짓듯 수직으로 쌓는 기술을 적용한 것인데, 생산성을 30%씩 높이는 결과를 낳았다. 무어의 법칙을 따르지 않고도 수익을 내는 방안을 마련한 셈이다.

◆ 미세공정 투자 대비 수익 내기 점점 어려워…공정 기술도 한계

세계 반도체 업계의 쌍두마차인 인텔과 삼성전자가 무어의 법칙 폐기 결정을 내린 것은 원가 절감과 공정 기술의 한계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컨설팅 업체 인터내셔널 비즈니스 스트래티지에 따르면 10년 전 65나노 반도체 개발 비용은 1600만달러 정도였다. 반면 최신 14나노 반도체 개발 비용은 1억3200만달러다. 개발비에 걸맞은 수익을 내려면 7.5배인 9억87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려야 한다. 이런 추세라면 5나노 공정에서 개발비를 회수하려면 매출 규모가 60억달러에 달해야 한다

이제는 집적도를 높이는데 드는 비용을 감수하기 어려운 상황이 된 것이다. 비싸게 팔 수 있는 몇 종류의 제품을 제외하면 무어의 법칙을 따르는 게 '사업적'으로 의미가 없어졌다.

기술 개발도 한계에 도달했다. 우선 데이터 간섭이 발생할 정도로 회로 간격이 좁아져 오작동 위험이 있다. 이를 상호간섭(cross-talk)이라고 부른다. 현재 선폭은 14나노까지 줄었는데, 7나노 이하부터는 이런 기술적인 장벽에 부딪힐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발열도 큰 문제다. 집적도가 높아지면 열이 흩어지지 않을 뿐 아니라 개개의 트랜지스터에서 나오는 열도 증가한다. 10나노대 공정을 쓴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들이 발열 잡기에 전력투구를 다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무어의 법칙 빈자리 메울 차세대 주자는…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무어의 법칙이 깨지고 빈 자리를 소프트웨어, 클라우드, 맞춤형 반도체가 채울 것"이라며 "알파고가 '딥러닝'이라는 학습프로그램으로 성능을 개선했듯이 소프트웨어가 하드웨어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온라인 저장장치인 클라우드의 등장도 고성능에 대한 집착을 버릴 수 있도록 도왔다. 클라우드는 인터넷으로 연결된 초대형 컴퓨터(데이터센터)에 소프트웨어와 콘텐츠를 저장해 두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쓸 수 있는 서비스다. PC나 스마트폰에 프로그램을 저장해둘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게다가 IOT, 바이오 등 IT융합이 전 산업 분야에서 일어나면서 고성능 범용 반도체 보다 각종 센서에 필요한 맞춤형 반도체 수요가 늘고 있다.

반도체 전문가들은 그동안 반도체업계의 목표가 물리적인 소자의 크기를 줄이는 것이었다면, 앞으로는 전력 소비를 줄이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말한다. 저전력이 핵심인 IoT 반도체 시장은 2020년 20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반도체 시장조사업체 VLSI리서치는 클라우드 방식의 데이터센터에 필요한 반도체 시장 규모가 5년내 200억~300억달러 더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삼성전자와 인텔도 새로운 메모리칩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인텔은 마이크론과 손잡고 낸드플래시보다 데이터 처리 속도가 빠른 D램 메모리의 장점을 결합해 속도를 높이고 수명을 크게 늘린 '3D크로스포인트'(3D Xpoint)를 2017년에 내놓는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저항성 램(ReRAM), 자기저항성 램(M램) 등의 차세대 메모리 제품을 개발 중이다. 삼성전자는 2011년 M램의 원천특허를 가진 미국 반도체 회사 '그랜디스'를 인수했고, SK하이닉스는 미국 IBM, 일본 도시바 등과 협력해 차세대 반도체 개발에 나선 상태다.

한태희 성균관대 반도체시스템 공학과 교수는 "집적도 향상이 한계에 부딪힌 만큼, P램, M램 등이 조만간 상용화되는 시나리오로 봐야 한다"며 "올해 하반기쯤에 가면 새로운 기술에 대한 기업들의 발표가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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